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테이코 중학교 (문단 편집) == 농구부 구성원 == * '''[[기적의 세대]]''' * '''[[아카시 세이주로]]''' - PG(주장) * '''[[무라사키바라 아츠시]]''' - C * '''[[아오미네 다이키]]''' - PF * '''[[미도리마 신타로]]''' - SG(부주장) * '''[[키세 료타]]''' - SF * '''[[쿠로코 테츠야]]''' - [[식스 맨]][* 기존의 농구 포지션 개념과는 동떨어진 플레이 스타일의 소유자이기에 특별히 정해진 포지션이 없다. 플레이 스타일을 보면 그나마 포인트 가드(PG)나 가드(G)에 가까운 편이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관점에 따라서는 볼을 가장 오래 가지고 있으며 게임 전체를 통솔하는 PG라는 포지션은 [[쿠로코 테츠야|쿠로코]]와 가장 거리가 먼 포지션일 수도 있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포지션은 없다. 고등학교 경기에서 담당하는 포지션은 1번 포인트 가드 역할에 가까운 듀얼 가드.] * '''[[하이자키 쇼고]]''' - SF * '''[[모모이 사츠키]]''' - [[매니저]] * '''[[니지무라 슈조]]''' - SF * '''[[시로가네 코죠]]''' - 감독 * '''사나다 나오토''' - 코치 [[파일:external/img4.wikia.nocookie.net/Sanada.png]] 성우는 [[코야스 타케히토]]. 등장 당시에는 1군 코치로 엄격하고 깐깐한 성격이지만 코치로서 능력도 뛰어나고 선생으로서도 충분히 개념잡힌 사람이다. [[시로가네 코죠|시로가네]] 감독이 지병으로 훈련 등에 자주 나올 수 없기에 주로 사나다 코치가 지도 감독을 맡고 있지만 거기에 의문을 갖거나 하는 일은 없고 시로가네 감독을 존경하며 잘 따르고 있다. 이후 기적의 세대가 2학년 때 전국 대회에서 우승한 직후 시로가네 감독이 지병으로 쓰러져서 정식으로 1군 감독에 승격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서부터 이사회의 간섭을 직접 받게 되는 등 위기가 찾아온다. 220Q에서 드러난 모습을 보면, 다른 기적의 세대들 보다 재능의 개화가 빨랐던 [[아오미네 다이키|아오미네]]가 너무 높아진 능력 탓에 주위와 어울릴 수 없게 되고 고독함을 느끼게 되자 이를 케어해 주려고 했다. 하지만, 학교의 이사회가 학교의 유명세를 위해서 기적의 세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들이 어떻게든 시합에 나갈 수 있도록 그 어떤 제재도 가하지 말라고 직접적인 압력을 넣어버렸다. 사나다 코치는 [[사춘기]]로 예민한 시기에 다른 선수들과 차별화하는 특별 대우로는 결코 좋은꼴을 볼 수 없을 거라고 강하게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시로가네 코죠|시로가네]] 감독이었다면 이제까지의 실적 등을 앞세워 이사회의 압력을 어떻게든 피해갈 수 있었겠지만, 사나다 코치의 경우 그 정도 관록은 쌓지 못했고 시로가네 감독의 도움도 바랄 수 없었던 상태라 더욱 더 아쉬운 상태였다. 그래서 '''진짜 [[만악의 근원]]은 이사회였던 셈'''이라고 한다. 결국 아오미네의 연습 불참을 묵인 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아오미네는 겉잡을 수 없이 삐뚤어져 버린다.[* 이 때까지만 해도 화가 나긴 했지만 다음 연습엔 어떻게 얼굴을 비출지 '돌아갈' 생각 정도는 하고 있었다.] 이에 자극받은 무라사키바라 등 다른 기적의 세대들도 재능의 개화와 더불어 갈등을 빚게 된다. 이후에 기적의 세대는 겉으로는 눈부신 성적을 냈지만 팀으로서는 완전히 붕괴해버렸다. 감독은 이를 두 눈으로 보면서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마음 고생이 심했을 것이라고 한다. 이후의 행보는 불명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